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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 김규항
낮 달
2009. 8. 11. 23:02
14p
예수는 살아생전 랍비, 혹은 기껏해야 예언자로 여겨졌을 뿐이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신성을 공식 인정한 건 그가 죽고 무려 300여 년이 지나서다.
14p
대부분의 성서에서 예수가 반말을 하는 한국은 예수가 오해되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사회다.
63p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전제하고 복음서를 읽는 건 예수의 절절한 삶을, 다시 말해서 복음서를 읽는 이유나 가치를 내팽개치는 일이다. 복음서는 '한 평범한 시골 청년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게 되었는가'를 증언한 책이지 '하느님 아들의 인간 흉내 쇼'를 적은 책이 아니다.
66p
평화란 '온 세상이 잃어버린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유지되는 조용하고 온순한 상태는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악랄한 형태의 폭력이다.
112p
믿는다는 건 실은 욕망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인 것이다.
117p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 세력은 두 가지 요건을 갖는다. 가장 악한 세력과 갈등하거나 짐짓 적대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인민들에게 존경심과 설득력을 가질 것, 그러나 그 갈등과 적대의 수준은 지배체제 자체를 뒤흔들 만큼 심각하지 않을 것. 그 두가지 요건의 절묘한 조화가 바로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적당한 열정과 적당한 순수함으로 무장한 그들은 삶의 안정과 사회적 존경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123p
기도든 명상이든, 하루에 30분도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는 혁명가가 만들 새로운 세상은 위험하며,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가 얻을 수 있는 건 제 심리적 평온뿐이다.
201p
우리 눈 앞에 일어나는 수많은 불의와 학살과 기아와 참상은 그가 자행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의 묵인 아래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하느님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세속적인 탐욕에 초탈하여 진지하고 근원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누구보다 종교적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 무신론을 선택한다. 오히려 세속적인 욕망과 이기심에 가득한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걍팍하게 주장하며 주님주님 부르짖곤 한다. 과연 하느님은 이런 정신적 참극을 벌이게 하는 그런 존재일까?
248p
우리는 정치적 혁명성이 '주장'되는 게 아니라 지배체제에 의해 '증명'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 중심 세력의 권력 지향적&자본 친화적 면모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선교 태도는 기독교에 대한 뭇사람들의 커다란 분노를 자초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땅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더러운 구렁텅이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영성가이자 혁명가였던 '예수'를 구출해보고자 하는 김규항의 시도다.
반성과 고민은 없고, 날선 주장과 텍스트만 쏟아져나오는 시대. 그가 말한대로 하루에 30분이라도 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혁명가가 조금 더 많아지기를. 그들에게 마음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